Critiques
작성자
NOS관리자조회
138등록일
10-06
박재국 제15회 개인전 - ‘발견과 재구성’ 展에 부쳐
박재국 제15회 개인전 - ‘발견과 재구성’ 展에 부쳐.
작가 ‘박재국’은 솜씨가 좋은 작가다. 즉, 타고난 재주가 있고 충분한 자기 연마를 통해서 얻 은 ‘기량(技倆)’과 흙에 대한 지식, 그리고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훌륭한 ‘기술(技術)’을 갖고 있는 작가다. 거기에 ‘기교(技巧)’ 또한 갖추고 있어 ‘야나기무네요시’가 말하는 훌륭한 공예작가가 가져야 하는 ‘기(技)’의 요건을 잘 갖춘 작가라 하겠다.
작가 박재국...
‘야나기무네요시’는 공예를 ‘귀족적 공예’, ‘개인적 공예’, ‘민중적 공예’로 나누고 있는데, 이 이론대로라면 ‘박재국’ 작가는 ‘개인적 공예’와 ‘민중적 공예’를 동시에 추구하는 작가가 아닐 까 싶다. ‘개인적 공예’를 다시 해석해 보면 순수미술적 성향의 작품을 말하는데, 쓰임을 목적으로 하는 공예가 아니라 심미성과 작가 감성의 표현에 중점을 둔 공예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의 상당 부분이 이 작품류에 속한 순수미술적 성향의 작품들이다. 이전의 작업 행보와는 사뭇 달라 보일 수 있으나, 그를 알고 보면 그리 의아해 할 일도 아니 다. 실제로 그의 작업실 구석구석에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쌓여 있기 때문이고, 그 작업들은 이미 10년 전부터 계속 돼온 그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주로 전통과 재료들을 연구한 흔 적들이 묻어나는 작업들이다. 그런 특성은 그가 빚어내는 용기(容器)에서도 발견되곤 한다.
파편이 머금은 생기
작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전국의 가마터를 돌며 도자 파편들을 확인하곤 한다. 도자 파편들을 감상하고 분석하면서 당시의 기술력과 특징을 확인하는 것이 그의 큰 낙이다. 도자 파편을 관 조(觀照) 하던 작가는 문득 버려졌던 그 조각을 되살리고 싶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한때는 흙을 거르고 치대고 만들어서 불의 심판을 기다리며 최고의 자기를 꿈꿨던 그 자기(磁器)가 깨진 파편이 되어 버려진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인생과도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작가는 그것을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에 파편을 재구성해서 새로운 이생에서의 생명을 불어 넣게 된 것이다.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그저 작품이 해체되고 다시 결합된 현대도자 작업 정도로 이해 할 것이다. 사실 작가는 그렇게 이해가 된다고 해도 크게 섭섭하진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 작품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결합된 결정체이고 앞으로 남아서 간직될 미래로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박재국의 시선으로 본 ‘달항아리’
작가는 전통의 형(形)과 선(線)에 집중한다. 특히 ‘달 항아리’는 조선의 청념 사상과 선비정신을 담고 있으며, 완벽을 넘어선 조형미와 ‘무심의 미학’을 보여주는 우리 문화유산의 백미로 볼 수 있다. 무덤덤하게 빚어진 항아리의 선은 그 어떤 억지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서 붙인 자국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형태도 그저 그런 ‘자국’으로 보이 지 않는다. 그 역시 조형의 일부가 된다. 소박하지만 기품이 있고 보이지 않는 기교가 있으며, 절제된 세련미가 돋보이는 형태와 색, 그리고 선. 그 느낌을 말과 글로는 형용할 수 없다. 그 아름다운 조형은 단순한 ‘자연스러움’이 아니다. 완벽한 조형성을 갖지 못하면 바로 깨지고 버 려지는 신세가 됐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를 바라보며 모든 것을 잊고 그 순수함에 빠져들 듯, 무심하게 만드는 그 아름다움을 어떻게 형언하겠는가?
작가는 그 아름다운 조형 요소들을 하나하나 분해하고 그것을 사진 작업에 담는다.
작가는 찍는 각도에 따라 변하는 형태와 선, 빛에 따라 달라지는 달 항아리의 만 가지 백색의 느낌을 포착해 낸다. 그리고 그 요소들을 재구성한다. 사진 인화지를 살짝 둥굴리기도 하고 접기도 하며 풍경과 함께 어울리게도 한다. 그러면 숨어 있던 형태와 선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즉 ‘강조’와 ‘변형’을 통한 조형 요소들은 새로운 미학적 의미들을 잉태하고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는 다시 그 현상들을 작업에 옮기는데 그 방식은 ‘도자’라는 장르를 뛰어넘는다. 그 작업은 과정일 수도 결과물이 될 수도 있다.
확대된 조형작업은 ‘달항아리’의 선과 형태를 강조한다.
‘박재국’은 달 항아리의 형태를 만들고 형태에서 흐르는 ‘선(線)’을 찾는다. 그리고 본인만의 시 각으로 재구성해 낸다. 그 선(線)과 형태는 당대의 시각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이었고 현재의 시각으로 보아도 다르지 않다. 그것에 매료된 작가는 비로써 그 ‘선(線)’을 재구성한다. 작가가 바라본 ‘선(線)’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자연스러움의 미(美)’가 아니다. 그저 흙의 성질과 유약의 특성, 그리고 불의 작용을 통해 얻어진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자연스러움’이란 우연적 성질의 것이 아닌, 완벽함을 넘어선 미(美)를 뜻한다. 인간의 몸과 자연의 섭리가 정확하고 신비롭고 완벽하듯, 그 자연스러움이라는 것 또한 계획된 완벽함 이상의 아름다움이다.
그렇게 작가는 진정한 의미의 ‘자연미감’의 의미를 규명해 내고 있다.
고로 과거의 미감을 더욱 강조된 현재의 해석을 통해 다가올 세대에게까지 미적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에 작가는 흙의 질감과 시간의 흔적을 작품의 표면에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작품을 물에 띄워서 반사된 형태가 만드는 ‘선’을 포착해 내는데, 그 선과 형태는 바로 ‘달 항아리에서 추출한 선(線)’이다. 달 항아리를 만들 때 주로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서 접합하는 ‘엎다지’ 기법을 쓰는데 중앙의 접합 부분은 소성 후에 열의 수축 팽창 작용에 의해 더욱 도드라지게 되면서 아름다운 자국을 남긴다. 만약 그 형태와 선이 조형적으 로 아름답지 못할 때는 도공은 가차 없이 작품을 깨버린다. 철저한 계획과 노하우를 통해 탄 생하는 것이지만 마지막 결과는 ‘불’에 의해 결정된다. 여기에서 바로 작가는 ‘기(技)’에 의해 완벽을 넘어선 ‘자연스러움의 미’를 발견해 내는 것이다. 또한 작가는 달항아리의 형태와 선을 재구성한 기하학적 도자조형 작품을 만들기에 이른다. 다분히 그 작품들은 현대 조형적 요소를 담은 작품이다. 현대적 감성을 담은 작품으로 보이지 만 그 형태와 선은 옛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인 한다. 이 작업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자하는 메시지는 ‘현대의 모든 미감은 옛 것에서 기인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미의 불멸성’이다. 이 외에 떡시루의 주입구나 굽을 따로 떼어 평면에 결합하면서 입체적으로 화면 을 구성하기도 하고 달항아리를 철, 유리와 결합하여 표현하면서 재료 융합적 일루전을 보여 준다. 또한 도판에 달항리와 한국전통 건축에서 볼 수 있는 형태들을 강조한 도(陶版)판 작업 들도 있다. 이처럼 작가 ‘박재국’은 전통의 조형적 요소를 발견해서 새로운 전통미를 만들어내 려는 부단한 시도들을 보여 준다. 작가의 역할은 발견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그 무 엇을 만들어서 세상과 함께 소통할 때 생명력을 갖는다. 이번 전시는 공예란 무엇인가? 미술 이란 무엇인가? 그 속에 전통의 재발견과 현대적 재구성에 대한 본질적 문제와 소견들을 작품 으로 제시한다. 그에 대한 또 다른 담론 형성은 관람자의 몫이 될 것이다. (재)한국도자재단 큐레이터 이홍원